에덴농원
영농일지
 
 
 
유기농산물
영농일지

 

게시판글 내용보기
이제 나만...
작성자 동산지기 등록일 13-10-14 10:03 조회 2,603





    "별일이로군"
    나는 무슨 사연인지 궁금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거야.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해.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 말이야.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어.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무슨 뜻이에요?"
    "안방 장롱처럼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게 아내고 남편인데,
    뭐가 애틋할 게 있겠어? 그저 내 남편이구나 하며 사는 거지."
    "뭐예요? 그럼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 타성으로 산단 말예요?"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나는 '아차'했어.
    아내의 기분을 거슬러 봐야 내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걸
    일찍이 터득한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늘 섭씨 구십구 도로 끓고 있다구."

    아내는 눈을 흘겼지만 싫지 않은 기색이었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다시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로 시선을 돌렸어.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십 년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했거든.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번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어.
    그러고 보니까 오늘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찍어내어
    어깨를 들먹거렸어.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어.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나갔어.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시선을 뗄 수 없었어.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듯
    그렇게 감싸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어.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다음주도 그 다음주도 우리 만두 집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어.
    그게 사람인가봐.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 거.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세 시에할아버지가 나타난 거야.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어.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어.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거야.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어.
    울먹이는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아들 집에 사셨대.
      두 분이 싸우셨냐구?
      그게 아니라 아들 며느리가 싸운거지.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한 분씩 모신 거야.
      그래서 두 분은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구.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어.
      이 땅에 아들이고 며느리인 나와 아내는 죄인처럼
      할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어.
    
    


















          목록보기